
출처: http://www.koreapas.net/bbs/view.php?id=freebbs&no=136078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우리들의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25년간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큰 배움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자기 손으로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대학을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은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겐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한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두고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볼 일이다."
학생 하나가 울부짖었다.
울부짖음 자체가 참, 오랜만이다.
이 울부짖음은 어떤 파장이 될까.
생각보다 냉소적인 사람들의 시선을 접하며 파장다운 파장이 되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비꼬는 사람들은 현실을 본다.
방법론을 찾는다.
차가운 방법론만을 찾는 것도, 오로지 아름다운 이상만을 찾는 것도 문제다.
적어도 이 방법론 없는 첫 걸음의 아름다움만은 있는 그대로 보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대책이 없는 꿈은, 막연한 계획뿐인 삶을 만든다.
현실적인 기반이 없는 이상을 말하는 것은 비아냥거려주고 싶을 만큼 공허하긴 하다.
깨우쳐라, 도망쳐라, 날아라.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의 당연했던 삶을 담담하게 무너뜨리고 다시 자신만의 현실로 재구축해나가는 엄청나게 괴로운 과정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용기를 내어 공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은 필요하다.
알고 있던 것이라고 해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해 주니까.
혹시 부조리를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사람에게라면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주니까.
대학은 어차피 이십대 초중반의,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마냥 파릇파릇한 청년들의 집단이다.
그런 집단에서, 자본주의와 경쟁사회는 끔찍하다며 새삼 울부짖는 조금은 과장된 철부지스러운 목소리가 있다고 해서
그걸 그렇게 냉소적인 시선으로 볼 일인가.
이 울부짖음을 씨앗으로 해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도 모를 일인데.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며, 저러고 강연회나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은 언뜻 보기에 유치해 보이는 저 한 걸음에 뒤지지 않을 만한 현실적인 개선의 노력을 하고는 있는 건가. 마치 학생들을 깨우치려는 듯한 태도가 기분나쁘다고 말하지만 정말로, 알고 있는 건가. 알고 있다면 왜, 발끈하는 건가.
"대학 내에서 운동권을 비판하는 가장 상투적인 논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운동권이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무시하고 전체주의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는 주장이 있겠는데 이 주장은 은연중에 '발화'라는 대화 양식을 '강요'라는 지배 양식으로 전치시키는 실수를 저지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절대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생각을 공유하고 그것의 진리값을 비판의 위험을 무릎쓰고 확인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 진리라고 여기는 독단주의자들은 오히려 자기 생각을 누가 흠집이라도 낼까 두려워 꼭꼭 감추어 놓기 일쑤다."
원문에 달린 NeoPool님의 댓글에서 가져온 글이다. 메시지는 둘째치고 대자보를 붙이고 공개적인 목소리를 낸 행동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의견들에 대한 답변의 일부다.
이 대자보는 아무리 봐도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 모두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조금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본질은 '아무 생각 없이 대학을 다녔던 자신' 에 대한 비난이며,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대학만 가라고 부추겼던 사회에 대한 비난이다.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대학 다니던 사람이 보면 이게 맞는 건가 하고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혹은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보면 이런 면만 있는건 아닌데 하고 씁쓸해 할 수는 있다. 대학이 끔찍해서 떠난다고 이렇게 광고하고 다니면 학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뭐가 되냐고? 뭐가 되긴. 생각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처럼 현실 속에서 나름의 길을 찾으면 되는 거고, 생각 없는 사람들은 한번쯤 생각해보면 되는 거 아닌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의견은 자동적으로 무가치해지는 건가. 왜 욕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욕먹은 것처럼, 그럴까. 계몽적인 어투라는 거친 형식이 그저 껄끄러워서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보이지도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그건 철부지보다 못한 바보다.
다만, 비슷한 문제로 먼저 고민해 본 사람의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목소리가 목소리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담담히, 조용히, 정말로 현실에 묵직한 돌을 던져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뜨거운 땀에 비해 이 대자보에 흐르는 눈물은 참으로 미미한 것이다.
자신이 낸 큰 목소리에 휘어잡히지 않고, 트랙에서 벗어났다는 희열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에 안도하지는 말고
담담히 큰 목소리에 걸맞는 큰 구축물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며 트랙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던 사람은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필연적으로 트랙에 한 발이라도, 손가락 하나라도 걸쳐야 함을 깨닫는 순간은 오겠지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두려움을 이겨낸 첫 걸음만은
아름답다.
Trackback Address >> http://kristy.pooroo.net/textcube/trackback/2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