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물도 미끄러질 정도로 매끈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공감이 스며들 틈이 없다. 포스터와 감독 이름을 보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다.
짧은 순간의 느낌을 미세하게 묘사하는, 사려 깊게 선택된 색감으로 채워진 영상을 보고 있자니 왕가위 이름 석 자가 바로 떠올랐다. 톰 포드가 좀 더 절제되고 도시적인 느낌인 것이 다를 뿐. 외로움, 순간의 아름다움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왕가위의 영화들과 이 영화에서는 비슷한 냄새가 난다. 큰 사건 없이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지만 그 중에서 아름다운 순간들만을 주의깊게 골라서 극대화시킨 영상들의 집합.
첫 데이트에 나가는 여자가 안절부절 못하다가 향수를 조금 과하게 뿌린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외출한 것처럼, 톰 포드의 첫 번째 영화는 치장이 조금 과하다. 영화에는 고급스러운 아이템만이 가득하다. 그 고급스러움이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한다. 혼자 남은 남자의 외로움과 절망, 그 절망을 살고 싶은 마음으로 돌려놓을 정도의 삶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이 영화의 중심인데, 그러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이 너무 신경써서 배치해 놓은 온갖 물건들과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무리하게 시도한 여러 가지 촬영 기법 때문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몇몇 장면에서 이야기의 흐름과는 별로 상관도 없는 과한 치장이 눈에 띄었다.
영화 초반의 화장실에서 어기적어기적 나오는 씬은 그래서 불편하다. 예쁘게 짜여진 세트 안에 못생긴 생활이 갑자기 끼어들어 전혀 조화되지 않는 느낌이다. 감독은 그 씬을 통해 영화에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을 조금 가미하려고 한 것 같지만, 오히려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은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너무나 뻔한, '설정'이라고 크게 써붙인 듯한 결말은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갑갑함으로 채워버린다. 지나치게 이야기의 완결성을 추구하고자 한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이 결말로 완전히 끝을 맺었다. 그 이후에 이어지게 마련인 구차한 생활, 빛바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삶 같은 것에는 영화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마지막 대사처럼 그저 아름답고 로맨틱한 순간이 전부라는 듯. 물론 그러한 영화의 시선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야 없지만, 왕가위의 영화에서와 같은 삶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이 이 영화에는 없는 것이 아쉽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깊게 공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상처를 껴안고 버텨내는 구질구질하지만 위대한 삶을, 이 영화는 거부한다. 그보다는 아름다운 환상을 그려내고자 한다. 분명히 '아름답다'는 면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성공이다. 바다로 뛰어드는 씬 하나만은 마음을 저릿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같이 본 언니는 두 시간짜리 뮤직비디오를 본 느낌이라고 했다. 대충 비슷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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